애국가가 처음 공식적이며 역사적인 자리에서 불려진 것은
개신교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독립협회의 서재필이
독립문을 세울 때(1896년 11월 26일)였다.
이때 감리교 기독청년들(정동교회와 배재학당 학생들)로 구성된 찬양대가
준공 기도회를 열고 애국가로 찬양을 하였다.
독립문은 중국 사신을 맞던 영은문을 헐고 지은 것이다.

애국가는 교회 청년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최병헌 목사(정동교회 담임목사)가 작사하였다고 하며
당시 찬송가인 <찬미가, 1905>에 실리게 된다.
이 찬송가는 윤치호 선생이 펴낸 것이라,
윤치호 선생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 가사는 현재의 애국가와 몇 군데 달랐으며,
아일랜드의 민요 ''''''''''''''''''''''''''''''''올드 랭싸인(auld langsyne)''''''''''''''''''''''''''''''''
곡에 맞춰 일제 시대에 기독 청년들
특히 엡웨ㅅ청년회(감리교회 전국 조직으로서 서재필 윤치호 등이 중심 지도자이며
청년들로서는 김구 황해도 대표, 서울의 이준 등) 와 배재학당, 이화학당,
황성기독청년회(YMCA)를 중심으로 청년들에게 불려졌으며,
찬송가에 실려 전국의 모든 이들이 부르게 되었다.

현재의 곡은 안익태 선생이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1936년 작곡한 것이다.
이 작곡한 곡이 처음 불려진 것은 1936년 베들린 울림픽 한국선수단이었다.
그리고 정부 수립(1948) 이후 대한민국 국가로 준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